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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삼국시대, 통일신라의 위인들(학자, 스님 등)이 저술한 서적에 대해 정리해보려 합니다.

 

 

보통 국사 파트를 정치, 경제, 사회, 문화로 나누어 공부할 때면 은연중에 문화 파트를 쉽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접했을 때 당황(?)하는 부분이 바로 서적부분이라 할 수 있겠는데요.

 

 

서적의 경우는 단순 지식형으로 객관식으로 묻는 경우도 비일비재하게 등장하기도 하기에 아주 지엽적으로 해당 서적의 내용 자체를 알기 보다도(알면 좋지만) '누가 쓴 책이다' 정도는 알아야 하겠습니다.

 

 

 

1. 삼국시대

 

 가. 고구려 역사서 : 유기100권 -----> 신집 5권 (이문진, 영양왕)

   : 고구려는 초기에 ≪유기≫ 100권을 편찬했는데, 영양왕11년에 이문진에 명하여 ≪신집 ≫ 5권으로 개수됩니다.

 

 나. 백제 역사서 : 서기 (고흥, 근초고왕)

   : 고흥이 편찬한 『서기』는 백제 최초의 역사서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시는 근초고왕의 백제 팽창시기로서, 고흥이 당시 편찬한 『서기』는 왕권을 합리화하고 왕실의 계보를 문자로 기록하고 이를 신성화하는 목적성도 일부 있었으리라 봅니다.

 

 다. 신라 역사서 : 국사 (거칠부, 진흥왕)

   : 마찬가지로 신라 역시 신라가 삼국 중 강국으로 거듭날 수 있었던 신라 삼대장 (지-법-진) 중에서도 신라의 전성기를 가져온 진흥왕 대 역사서가 저술됩니다. 거칠부는 신라 진흥왕 때의 재상으로써, 대아찬이었으며 《국사()》를 편찬하여 파진찬의 관등을 받습니다.

 

 

2. 통일신라

 

 

 가. 의상스님

   - 화엄일승법계도  

 

 나. 원효스님

   - 십문화쟁론, 금강삼매경론, 대승기신론소

 

 다. 혜초스님

   - 왕오천축국전 (성덕왕)--->> 당시 발해 "무왕"임

 

  cf) 국사공부 중에서도 스님들에 관련된 사상과 저서에 대해서는 추후 다른 콘텐츠에서 작성하도록 하겠습니다.

 

 다. 김대문 (ㅎ,ㅎ,ㄱ,ㄱ)

   - 화랑세기

   - 한산기(신라 한산주 지역에 대한 이야기),

   - 계림잡전(최치원의 계원필경과 헷갈리지 말기!)

   - 고승전

 

 라. 최치원 (통일신라하대 문성왕)

   - 계원필경

   - 법장화상전

   - 사산비명 

 

 

문화사를 공부하면서 무엇보다 중요한 건 단순하게 그 책을 두음법으로 암기하려하기 보다도 그 책을 서술하게 된 배경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가 될 때가 많습니다.

 

또한 해당 인물이 쓴 서적만 외우기보다도, 그 인물이 살았던 시기의 왕이 누구인지에 대해서도 복합적으로 추가하며 살을 붙여나간다면 인물 관련한 서적을 묻는 문제에 대해 대응하기 수월해지리라 생각합니다.

 

 

 

 

 

<참고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두산백과, 신영식 해동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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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가야 연맹에 대해 알아보려 합니다 :)

 

흔히 김해 김씨, 고령 김씨 등등.. 김씨가 우리나라에서 제일 많으면서도 본관 역시 많은데요-

 

하지만 역사 공부를 할 때의 가야에 대해서는 우리가 심도있게 학습하는 편은 아닙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무래도 연맹국가단계에서 중앙국가체제로의 발전을 하지 못해서, 또는 백제와 신라 사이에 있다보니 큰 국가로 성정하지 못하게 되는 등의 이유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가야는 여러 나라들이 마한, 변한, 진한 중에서도 변한 지역에 생겨나게 됩니다. 그 중에서도 김해 김씨의 시조는 김수로 왕이라는 데에서 오늘은 한번 가야연맹에 대해 알아보려 했습니다.

 

 

가야와 관련해서 여러분이 가장 먼저 접하는 것은 국어 시간이라면, '구지가'이겠지요?

 

가야 연맹에 대해 정리를 하겠습니다.

 

 

1) 성립 : 마한 변한 진한 중 변한

  "가락국기"에서 김유신 일족에 대한 기록이 등장합니다

 

2) 가야 건국초 성격 : 신라와 비슷하게 토착세력이 강함

   cf) 토착세력이 역시 강했던 신라는 불교의 도입이 가장 늦습니다

 

3) 금관가야 : 김해 지방

  - 김수로 건국(42년)

  - 3세기 경 발전

  - 4세기 초 광개토대왕이 신라를 도와 왜구를 격퇴하는 과정에서 쇠퇴

  - 4세기 말 ~ 5세기 초 해체 (법흥왕에게 흡수)

 

4) 대가야 : 고령 지방

  - 5세기 초 ~ 5세기 후반 세력확장

  - 5세기 후반에는 남조에 사신 보냄

  - 6세기 초에는 백제와 신라와 함께 대등함.

    금관가야를 흡수한 신라 법흥왕과 결혼 동맹

    이후 백제 성왕과 함께 싸우다 진흥왕에게 흡수

    cf) 진흥왕 순수비들(북한산비, 창녕비, 황초령비, 마운령비) 중

         창녕비는 비화가야 멸망 후 대가야 정복 의지를 담은 비!

 

 5) 금관가야 & 대가야 모두 연맹왕국 단계에서 멸망

 

 6) 경제

   - 주로 벼농사, 수공업 및 토기 번성

   - 변한 지역의 풍부한 철을 수출함 (중계무역으로 낙랑과 규수지방 연결)

 

 7) 주요 문화

   - 금관, 철제 무기 갑옷, 수레형 토기

   - 일본 스에키 토기 문화에 영향

   - 고령 지산동 고분 : 순장의 흔적!!

     cf) 순장 관련 기억할 점! : 신라 지증왕 순장 금지시킵니다 (꼭 기억!)

 

 

네, 이상으로 가야 연맹과 관련한 주요점들을 살펴보았습니다 :)

 

 

<참고 : 네이버백과사전,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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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고려시대의 화폐와 조선시대의 화폐에 대해서 알아보려고 합니다. 화폐라고 하긴 했지만, 화폐와 관련해서 당시의 경제 생활상에 대해서도.. 짚고 넘어갈 점에 대해 언급드리려 합니다.

 

 

내용 자체는 크게 어려운 내용은 없습니다.

고려시대의 동전 내지 화폐는 고려시대의 성종 대 등장했던 건원중보를 최초의 철전으로 봅니다. 

 

 

그 후에는 숙종 대 여러 화폐가 등장하게 되는데요. 활구/은병/삼한통보/해동통보/해동중보가 바로 그것들입니다. 숙종 대 의천스님의 건의에 따라 주전도감(동전 제조 관련 관청이라 생각해세요)을 설치로 이러한 화폐가 많이 등장했다고 봅니다.

 

 

그러다 원간섭기에 이르게 되고, 이 시대에는 지원보초라는 원나라 화폐가 등장하게 됩니다.

 

 

원간섭기가 끝난 뒤 공양왕 시기에는 '저화'가 등장하게 됩니다.

 

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고려의 동전(화폐)>

 

 1. 건원중보 (최초의 철전, 성종)

 2. 활구,은병,삼한통보,해동통보,해동중보 (숙종)

 3. 지원보초 (원나라 화폐, 원간섭기)

 4. 저화 (공양왕)

 

 

 

조선시대에 들어서는 곧장 새로운 화폐를 주조하기 보다도, 태종 대에는 사섬서에서 저화를 그대로 발행합니다.

 

 

그러다 세종 대에는 조선통보를 발행하는데 주의할 점이 "해서체"라는 점입니다. 조선통보는 "해서체"와 "팔분체"로 별도로 있기 때문입니다.

 

 

세조 대에는 팔방통보를 발행하는데, 화살 촉 모양과 같아 유사시 무기로도 활용을 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고 합니다.

 

 

이후 영정법을 실시하기도 했던 인조 대에는 앞서 말한 것처럼 "팔분체" 조선통보를 발행하게 됩니다. 그리고 상평통보를 발행하기도 하는데 이 상평통보가 전국 유통된 것은 숙종 대 이르러서 입니다.

 

이를 정리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조선의 동전(화폐)>

 

 

 1. 저화 (태종, 사섬서)

 2. 조선통보 (세종, 해서체, 주전소)

 3. 팔방통보 = 유엽전 (세조)

 4. 조선통보 (인조, 팔분체, 정묘호란 前) + 상평통보 주조(병자호란 前)

 5. 상평통보 전국 유통 (숙종)

 

 

+ 근대 조선의 동전

 1. 원납전과 당백전 (대원군) 

    (원납전 : 원해서 냈다는 돈, 당백전 : 물가 상승을 일으키게 된 돈)

 2. 제일은행권 유통시작 (1876, 고종 친정 시작, 강화도 조약과 관련)

 3. 대동폐 = 대동은전 (고종, 1882)

 4. 당오전 (묄렌도르프 건의, 고종, 전환국 1883)

 5. 백동화 (고종, 전환국, 1892~1902)

 6. 제일은행권 (고종, 1905, 법정화폐)

 

 

네, 이상으로 고려와 조선시대의 화폐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참고 : 신영식 해동한국사, 두산백과, 네이버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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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고려시대의 토지제도 변화와 그리고 기타 토지들의 종류에 대해 알아보려 합니다!

 글이 도움이 된다면 광고 한 번씩만 눌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ㅠ_ㅠ

 

앞선 콘텐츠에서처럼 고려왕조의 왕들을 외우면 시대 흐름 이해에 도움이 된다고 말씀드렸는데요-

 

 

고려의 토지제도는 크게 3번에 걸쳐 바뀐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 3번이란, 바로 경종 대의 "시정전시과", 목종 대의 "개정전시과", 문종 대의 "경정전시과"가 바로 그것입니다.

 

 

아! 그 전에 전시과제도라는 것이 무엇이냐면, 전시과제도란 "전지"와 "시지"를 일컫는 말입니다.

 

그럼 전지와 시지는 무엇일까요?

전지 : 곡물을 재배하는 땅을 전지(地)라 합니다

시지 : 땔 나무를 공급해주는 시지()라 합니다

옛날에는 당연히 석유와 같은 연료가 없었으니 땔감이 주요했겠죠.. 그래서 전지와 시지를 분급하기 위한 제도, 즉 전시과 제도라고 말하게 되는 것입니다.

 

BIG

 

종        (정전시과)

 

종        (정전시과) 

 

종        (정전시과)

 

- 시개경 / 경목문 이렇게 외우시면 편할 듯.. 합니다. 개인에 따라 다를 수 있어요

- 이 각 왕 대에 새롭게 시도된 전시과 제도는 당연히 제도별로 중요한 것들이 있습니다.

 

- 먼저 경종 대 시행되었던 시정전시과의 주요 특징은 무엇일까요?

 

 1)경종 - 시정전시과 [始]

    - 말 그대로 처음으로 전시과 제도가 시작된 것임을 말해줍니다.

    - 지급 기준 : 관품과 인품을 함께 사용 ---> 주관적 지급기준

    - 분급 대상 : 광종 대 정해진 4색공복(자,단,비,녹)으로 구분해 지급

  

       cf) 신라에도 4색공복이 있었습니다.

            무슨 색? -> 자, 비, 청, 황

  암기법 : 신라의 골품제도는 자비가 없는.. 얄짤없는 제도였다!

 

       cf) 그럼 백제는? 백제는 3색 공복이었습니다.

  무슨 색? - > 자, 비, 청 : 신라가 색상이 하나 더 늘었다고 보면 됩니다.

 

 

   2)목종 - 개정전시과 []

      - 말 그대로 변경된 전시과 제도라는 것입니다. (고칠 개)

      - 지급 기준 : 관품만 반영합니다 (인품 반영 X)

      - 오로지 관품의 고하에 따라 18급으로 나누어 지급함으로 객관적이게 되었죠

      -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실직과 산관 모두 지급을 받았다는 점입니다.

     

 

   3)문종 - 경정전시과 []

      - 위의 시정, 개정전시과의 특징도 중요하지만,

      - 문종 대의 경정전시과 때, 무산계전시 & 별사전시과가 마련되어 승려, 지사도 별사전을 받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이것의 시행 결과로  한외과는 경정전시과 이후 소멸하게 됩니다.

        - 경정전시과 때의 산직에게도 지급했던 토지제도는 경정전시과에 이르러 산직에게는 토지수급대상에서 제외가 됩니다.

 

          cf) 조선시대는 이후 콘텐츠에서 설명하겠지만, 조선의 토지제도는 과전법-> 직전법 -> 관수관급제 -> 직전법 폐지 (과직관직)

               그런데 고려시대의 산직에게 토지가 제외되었던 것처럼 조선시대는 직전법을 시행하면서 산직에 대해 토지 지급이 폐지되게 됩니다.

 

        -  또 아울러 무신에 대한 처우가 개선됩니다.

 

 

 - 정말 간소하게 각 전시과 제도에서 중요한 포인트만을 언급했는데요, 더 자세히 각 제도에 대해서 한번 쯤 다시 보고 갈 필요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참고 : 네이버 지식백과, 두산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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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지난 콘텐츠에서는 통일신라의 "민정문서"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이번에는 고려시대의 토지에 대해서 알아보려 합니다.

 

 

먼저 통일신라나 고려시대에서 보여지는 토지 중 귀족들에게 내려지는 토지 중에서 녹읍(祿邑) 식읍(邑)이라고 들어보셨나요?

 

 

둘 다 모두 "-읍"으로 끝나지만, 차이는 존재합니다.

 

 

먼저 녹읍이라는 것은 신라시대에 시행된 것으로써, 관료 귀족이 소유한 일정한 지역의 토지를 일컫는 말로써, 해당 지역으로부터 세금을 수취할 수 있는 "수조권" 뿐만 아니라, 해당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 노동력과 공물을 모두 수취할 수 있는 막강한 특권이 부여된 권리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두산백과 정의 정리)

 

 

이 녹읍은 처음 신문왕 때 폐지되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신문왕은 한반도를 통일한 이후 보다 확고히 왕권을 공고히 하려는 의도에서 시행되었다고 보아도 되는데, 녹읍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순서가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즉, 신문왕은 녹읍을 바로 폐지한 것이 아니라, 관리들에게 "관료전"이라는 일종의 새로운 봉급제도를 만들고 난 이후에 녹읍을 폐지하게 됩니다.

 

 (관료전 지급, 687년) -> 이후 (녹읍 폐지, 689년)

간단히 생각해봐도 당장 새롭게 지급할 기준도 없이, 녹읍 제도를 폐지하면 귀족들의 반발도 상당했을것입니다.

 

 

그렇게 녹읍을 폐지했지만, 결국 오래가지 않아 성덕왕을 거쳐, 757년(경덕왕 16) 경덕왕 대에 다시 녹읍은 부활하게 됩니다. 이러한 녹읍에 대한 정보를 이해하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반면 식읍에 대해 알아보자면, 그렇게 어려운 내용은 없습니다.

식읍은 삼국시대에서부터 조선 전기까지 있어왔는데, 시기별로 주요 성격은 조금씩은 달랐지만 주된 식읍의 성격은 "공신"에게 주어진 것이라고 기억해두면 용이하리라 생각합니다.

 

 

식읍 역시, 수조권과 노동징발권이 있었다는 데 녹읍과 공통점이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녹읍과 식읍, 이번 콘텐츠에서는 간단하게나마 그 둘에 대해서 알아보았는데요. 관리들이 흔히(?) 하는 말로 나라의 녹을 먹는 사람이 그래서야 되겠어? 라는 말을 생각했을 때, 관리에게 지급된다는 성격을 갖는것이 <녹읍>이라 생각하면 됩니다. 식읍은 "네가 나라를 위해 공을 세웠기 때문에 너네 가족은 대대로 먹을 () 걱정 안하게 나라가 책임지겠다!" 그래서 <식읍>이라 생각하면 둘의 차이가 쉽게 이해될 거라 생각해봅니다 !

 

 

다음 콘텐츠에서는 고려시대의 토지제도에 대해 알아보려 합니다 :)

 

 

 

<참고 : 두산백과사전, 네이버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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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통일신라의 주요 문서라고 할 수 있는 "민정문서"에 대해서 알아보려 합니다!

 

 

민정문서에 대해서는 대다수 분들이 공부하면 가장 먼저 접하는 정보가 바로 도다이사에서 발견되었다고 아실텐데요, 실제 수험에서는 그 정도의 정보로 문제를 내진 않습니다.

 

 

그래서 보다 중요한 사항에 대해서 언급하려 합니다.

 

 

 

민정문서

 

 1) 인구는 남녀 모두 포함 + 연령에 따라 6등급 분류

     But, 어린이, 노인, 노비도 포함했으나,

    개개인의 이름과 나이까지 표기는 안함.

 

 2) 호구와 다르게 전답 면적의 증감은 기록 안됨.

 

 3) 촌락을 단위로 소와 말의 수, 뽕나무, 잣나무, 호두나무를 기록

  : 뽕나무, 잣나무도 과세대상임.

 

 4) 해당 촌락(+4개촌락) 조사를 매년하고, 3년에 한 번 재작성함.

 

 5) 민정문서에서 드러나는 토지의 종류 (5가지)

   *  촌주위답(촌주 소유)

   *  내시령답(중앙관료인 내시령 땅),  

   *  관모전답(국가경비 충당 목적),

   *  마전

   *  연수유전답(농민, 민호가 소유한 토지 = 정전과 비슷)

 

 cf) 적전 : 고려나 조선 왕이 직접 경작하던 토지

      궁방전 : 왕실 소요 경비를 위한 토지

  ( - 적전 & 궁방전은 민정문서에 포함되는 토지가 아닙니다! )

 

 

 

이상으로 민정문서와 관련한 중요 사항 5가지를 알아보았습니다. :)

각 토지별 내용을 알아둬야 합니다.

 

<참고 : 네이버사전, 두산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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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고려의 주요 기구들에 대해서 정리해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고려는 이전의 통일신라에 비해 귀족적 성격이 줄었지만, 여전히 조선에 비하면 귀족적 성격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러한 귀족적 성격을 가진 중앙의 기구들이 있었죠.

 

 

앞서 고려의 성종에 대해 설명하면서, 고려 성종은 2성 6부 체제를 도입했다고 했습니다. 그 2성이 무엇인지에 대해 설명하겠습니다.  

 

 

1. 중서문하성

   -   문하시중(종1품) 총괄, 재신(2품이상)+낭사(3품이하)로 구성

 

2.   상서성

 - 6부 설치, 정책 집행 -> 명예직 "상서령"이 대장

 - 이 상서령은 실직이라기보다도 산직개념으로서 고려 왕조의 왕실, 즉 종친들에게 주로 임명되었기 때문에 실질적인 권한을 가졌다고 보긴 어렵겠습니다.

 

 

3. 귀족적 성격의 기구 (도병마사 & 식목도감)

  -  도병마사 : 재신+추밀 -> 도평의사사로 발전, 재추합좌기구

 - 식목도감 : 대내적인 법제와 격식 논의, 재추합좌기구

 

 

4. 주요 기구

 - 중추원 : 추밀(군사기밀) + 승선(왕명출납), 군사기밀, 왕명출납

 - 어사대 : 관리비위감찰 cf)통일신라 : 사정부

 - 대간 : 중서문하성의 낭사+어사대 관원

        -> 간쟁+봉박+서경권 행사

 

 

5. 특이 명칭 알아두기

 -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고려는 "양부"라는 개념이 있는데, 어렵지 않습니다. 중서문하성을 재부라 일컫기도 했고, 중추원을 추부라고 일컫기도 했는데, 이를 아울러 양부라고 말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 중서문하성 - 재부 : 재신+낭사

            : 중 추 원     - 추부 : 추밀+승선

 

 

6. 그 외 고려 행정기구의 특이사항

 -  고려시대에 전국을 5도 양계, 경기로 나눔

     5도는 상설행정기관이 없는 일반행정 단위임

    안찰사는 경관임(지방관 X), 6개월 임시직임

 

 

 

7. 통일신라 & 고려 & 발해 행정기구 비교하기

  

 

통일신라

고려

발해

국정총괄기구

집사부

중서문하성

정당성

관리감찰

사정부

어사대

중정대

법률담당

좌우방부

형부

예부

 

 

 

이상으로 고려의 주요 행정기구 및 통일신라, 발해의 행정기구를 비교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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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지난 조선시대의 과거제도 중에서도 문과와 무과에 이어 마지막으로 잡과의 선발단계에 대해 알아보려 합니다.

 

 

잡과는 일종의 기술직 선발 시험이라 보면 되겠습니다.

 

 

기술직을 뽑는 잡과는 총 46명을 선발하고, 초시해당관청에서, 그리고 복시예조에서 관장했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잡과는 무과와 다르게 전시는 없었습니다.**)

 

 

특별히 표로 나타낼 내용은 없고 위의 내용이 중요하다 하겠습니다.

 

 

 

이상으로 오늘의 내용을 마치기 보다도, 고려와 조선시대의 과거제도에 대해 추가적으로 알아보려 합니다.

 

 

조선시대의 문음은 범위가 고려보다 축소되어 2품이상 관원이나 3품이상의 청요직 등의 고위관리의 후손들을 대상으로 시행되었습니다.

 

 

이 경우에도, 취재의 절차를 거쳐야 했습니다. 무조건 '이 사람 괜찮다' 라는 말만으로 관직에 바로 임용되지는 않았다는 점에서 고려의 문음보다 까다로워졌다고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과거에 반드시 합격해야만 고위직으로 승진이 가능했습니다.

 

 

또 고려와 조선 모두 현직관리가 다시 과거에 응시하여 고위직으로 승진하는 것을 생각해보는 것이 가능했습니다. 참고로 조선의 경우는 정3품 하직 당하관 이하로 자격이 더 넓어졌습니다.

 

 

추가적으로 조선의 왕세자는 성균관에서 입학식을 치르고 궁궐 내부의 세자시강원에서 교육을 받았습니다. 존경각이라고 하는 곳은 유생들이 사용하던 도서관으로 세자 교육기구가 아님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네, 지금까지 조선의 과거 제도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고려보다 한층 더 합리적이고 실력 중심의 채용제도를 마련했다고 하겠습니다. 기억해야할 점이 많다고 생각되겠지만, 정확한 채용인원의 숫자와 조선과 고려의 차이점이 있는 부분을 기억하신다면 충실한 학습이 이뤄지겠습니다.

 

 

<참고 : 네이버 백과사전, 두산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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