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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고려시대 불교에 대해 알아보려 합니다.

 

 

1. 고려 초기 불교

 

 1) 교종 & 선종의 공존

   - 고려 초기 화엄사상 정비 (균여)

   - 보살의 실천행 강조한 균여의 화엄종이 성행

   - 이후 선종에 대해 관심도가 높아짐.

      cf) 통일신라에 이미 선종에 대해 왕실에서도 관심도가 높아지던 상황이었기에 고려시대에도 선종은 이미 보급되어 있었습니다.

 

 2) 교종 정립

   - 개경에 흥왕사, 현화사와 같은 큰 사원이 세워져 교종 번성!

 

 3) 광종의 교단 통합

   - 광종은 균여의 화엄종을 중심으로 교종을 재편합니다.

   - 광종은 제관과 의통을 중국에 보내 천태학을 보급합니다.

   - 하지만 광종 사후 법안종과 천태종의 움직임은 쇠토하고, 교선의 대립은 지속됨.

 

 

2. 고려 중기의 불교

 

 1) 교종 번창

   - 현종 대 거란과의 전쟁 동안 대장경 조판으로 교종 번성

   - 불교 교리 및 불경 정리가 이뤄짐.

   - 교종의 중심 종파 2개 활성화 (화엄종 vs 법상종)

   - 화엄종 vs 법상종 비교표

 

  종파

 중심 사찰 

 위치 

 특징 

 공통점 

  화엄종

흥왕사

  개경

 화엄사상 

교종

  법상종

 현화사

 유식사상

 

 2)대각국사 의천의 교단통합

   - 원효의 화쟁사상을 중시

   - 흥왕사를 본사로 삼아 화엄종을 중심으로 각 교종 종파를 통합시도(But 의천 사후, 교종 다시 분열)

   - 선종을 통합하기 위한 목적으로 국청사 창건

   - 교관겸수 & 내외겸전을 중심으로 이론의 연마와 실천 강조

 

 

3. 무신정권기의 고려 불교

 

  1) 선종의 발달

    - 무신정권은 귀족적이던 교종을 탄압하고, 선종을 후원함.

    - 이 때 조계종이 발전함.

    - 불교 본연의 자세 확립을 강조하는 선종의 새로운 신앙 결사운동.

 

  2) 수선사 결사운동

    - 조계종 승려인 보조국사 지눌은 순천 송광사에서 개혁운동 전개

    - 예불 독경과 선수행, 노동을 강조

    - 정혜쌍수, 돈오점수 강조

    - 무신정권의 후원뿐만 아니라 지방민의 호응도 있었음.

    - 선종 중심으로 교종을 포용하려 한 의의 있음.

    - 이후 수선사 결사운동의 발전 : 혜심의 유불일치설로 발전

       -> 이는 결국 성리학 수용을 가능하게 하는 사상적 토대가 됨.

 

  3) 백련결사운동

    - 천태종 승려 요세가 강진 만덕사(백련사)에서 백련결사 주장

    - 요세는 예참과 아미타불 염송으로 서방정토로 왕생한다는 정토신앙까지 수용 (참고 : 정토신앙은 원효스님도 강조)

    - 보현도량의 개설

    - 수선사와 양립하며 고려 후기 불교계를 선도함

 

  결사

 종파 

 인물 

 내용

 특징 

 연대 

 중심 사찰

  수선사

 조계종

 지눌

 예불독경·선 수행·노동

 성리학 수용

 사상적 토대 마련

 1204

 송광사(순천)

  백련사

 천태종

요세

참회의 강조(법화신앙)

 백성들의 신앙적

 욕구 고려

 1208

 만덕사(강진)

 

 

4. 고려 말기의 불교

 

 1) 고려 말의 불교는  간섭, 라마 불교의 전래, 사원 경제의 거대화 등으로 개혁 운동이 퇴색하고, 폐단을 드러내게 됨.

 2) 권문세족의 불교 장악

   - 사원은 막대한 토지를 소유하고 고리대업과 상업에도 관여하는 등 부패가 극심함

​ 3) 보우

   - 교단 통합 정리 운동

   - 임제종의 유입

   - 보우는 원나라에서 임제종을 들여와 전파시킴

   - 그 결과 전통 불교는 끊어지고 불교계의 주류로 임제종이 떠오름

 

 

 

이것으로 고려시대의 문화, 불교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참고 : 신영식 해동한국사, 두산백과사전, 네이버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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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고려시대의 역사서에 대하여 알아보려 합니다.

 

고려시대는 고구려를 계승했다는 의식에서처럼 초기 고려시대의 역사서에서도 그 의식이 드러납니다. 즉 자주적인 기상이 드러납니다.

 

 

 1. 고려 초기의 역사서

   1) 고려왕조실록 - 건국초기부터 편찬됨. 하지만 거란 침입으로 소실

   2) 7대실록 - 태조~목종까지. 현종 대 편찬시작되어 덕종 대 완성.

    - 하지만 임진왜란으로 소실

   3) 가락국기 - 문종 대 김양감이 지음. 금관가야의 역사입니다. 대가야 아님. 현존 X

   4) 속편년통재 : 예종 대 홍관이 지음. 편년체 사서. 현존 X

 

 

하지만 고려 중기에 이르면서 문벌귀족 세력이 강해지면서 점차 자연스레 보수화 되는 경향이 드러나게 됩니다.

 

 

 2. 고려 중기의 역사서

   1) 삼국사기(인종 대 김부식)

     - 김부식 등이 왕명으로 편찬한 우리나라 최고의 역사서

     - 고려 초에 저술된 자주적 성격의 "구삼국사"를 바탕으로 함

     - '구삼국사'의 역사관은 자주적이었으나, 김부식의 삼국사기는 유교적 합리주의에 기초하여 기전체로 저술함

     - 김부식은 신라 계승 의식을 드러냄 (백제는 속임수가 많은 국가로, 고구려는 호전적인 국가로 비판함)

     - 역사적 사실과 사관의 주관이 담긴 사론을 구분

     - 내용적 구성 : 본기, 열전, 지, 연표로 나누고, 고구려-백제-신라를 본기에 담음 

     - 삼국을 아'(我)'로 표현해서 민족 의식을 명확히 했음

 

   2) 편년통록 (의종 대 김관의)

     - 송나라 왕실 계보를 담은 편년통록을 참고하여 저술

  

 

 3. 고려 후기 : 무신기의 역사서(12~13세기)

   1)동명왕편 (명종 대 이규보 - 주의!!: 이의민 집권기에 저술)

     - 이의민 집권기에 이규보가 편찬하였고, '동국이상국집'에 수록

        주된 함정은 이규보는 최충헌 대 주로 활동했지만 동명왕편은 이의민 집권기에 저술되었다는 걸 기억하세요.

     - 동명왕편은 민간 전승으로 전해진 고구려 동명왕의 업적을 칭송한 일종의 오언시로 구성된 영웅 서사시

     - 고구려 계승의식을 반영하고 고구려 전통을 노래

 

  2)해동고승전 (고종 대 각훈)

     - 무신정권기 "교종" 승려인 "각훈"이 왕명으로 편찬

     -  삼국시대 승려 30여 명의 전기 수록, 현재 유통편 2권만 현존.

     - 교종(화엄종)이 선종 유행에 대한 일종의 대응.

     - 중국 불교와 대등한 입장에서 서술됨.

 

  3)삼국유사 (몽골간섭기 충렬왕 대 일연)

     - "선종" 승려인 "일연"이 저술

     - 단군의 건국 이야기 수록

     - 단군의 후예가 부여-고구려-백제로 이어진다고 주장

     - 삼한과 신라를 중국 계통으로 파악!

     - 삼국사기가 불교와 신이사관적인 내용을 삭제한 데 대한 반응으로 일연의 삼국유사는 유교적 합리주의 사관에 대해 비판적임

     - 기사본말체

    

  4)제왕운기 (몽골간섭기 충렬왕 대 이승휴)

     - 칠언시와 오언시로 편찬한 역사시

     - 상권과 하권으로 구성됨. 상권은 중국역사, 하권은 우리나라역사

     - 삼국의 시조를 중국으로 보는 삼국유사와 달리, 삼국의 시조를 천손(단군의 후손)으로 파악함

     - 삼조선설을 처음으로 기록 (단군/기자/위만)

     - 문제점은 단순히 어람용으로 간행되어, 중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기록은 반영되지 않았음

    

 

 

 

이상으로 고려시대 문화 중 역사서에 대한 서술을 마칩니다. 다음 콘텐츠에서는 고려시대의 불교에 대해 서술하겠습니다.

 

 

<참고 : 신영식 해동한국사, 두산 백과사전, 네이버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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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고려시대의 문화에 대해 알아보려 합니다. 한번에 모든 것을 다 기록하기보다도 나눠서 중요사항에 대해 서술하려 합니다.

 

 

01. 고려시대 문화의 개요

 

 - 고려시대는 고려 성종 대 최승로의 활약 등으로 유교가 정치 이념으로 채택되었고, 동시에 불교는 저변이 확대되어 일반 민중 생활 전반에 영향을 끼쳤습니다.

 

 - 이러한 불교 사상은 점차 심화될 수밖에 없었기에 교종과 선종 등 여러 종파가 등장하면서 동시에 교종과 선종의 통합운동이 추진됩니다.

 

 - 통일신라의 예술도 뛰어났지만, 청자와 인쇄술은 세계적인 수준으로써 인쇄술은 최초의 금속활자인쇄본은 무구정광대다라니경 등에서 그 수준을 알 수 있습니다.

 

 

02. 고려시대 문화에서의 핵심!

 

 - 앞서 서술한 바와 같이 최승로는 성종에게 시무28조를 제시하면서, 불교의 폐단을 지적하며, 유교 정치를 지향할 것을 제안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점은 불교 자체를 폐지하자는 주장은 아니며, 단지 정치에 있어서 불교가 아닌 유교 정치 이념을 지향하자는 것입니다.

 

 - 고려 후기에는 성리학이 안향을 통해 도입되는데, 안향은 몽고 간섭기의 충렬왕 대에 도입됩니다.

 

 - 고려시대의 주요 집권세력들은 크게 문벌귀족 - 무신 - 권문세족으로 이어지는데, 문벌귀족 사회를 거치면서 귀족 사회의 보수화, 폐쇄화가 이루어집니다.

 

 - 하지만 과거제도도 광종 대 쌍기의 건의 이후로 점차 정착되는 과정에서 관학보다도 사학이 융성하게 됩니다. 그 대표가 바로 최충의 9재 학당을 포함한 사학 12도의 융성이 그것입니다.

 

 - 농경문화에 있어서는 우경 등의 심경법이 일반화 됩니다. 참고로 우경은 지증왕 대 본격 시작된 것으로 보입니다. 밭농사는 2년 3작으로 지었으며, 남부 지방만을 중심으로 이앙법이 시행됩니다. (이앙법의 전국적 실시는 조선후기에 이르러서입니다.)

 

 - 불교 문화에 있어서 스님들의 활동에 대해서도 중요한 부분이라 할 수 있는데요. 대각국사 의천은 교관겸수, 내외겸전 등 천태종을 창립합니다. 비교할 것은 보조국사 지눌은 정혜쌍수 등 조계종을 창립합니다. 이는 당시 무신정권으로부터 후원을 받습니다.

 

 

03. 고려시대 교육기관

 

 - 고려시대는 이전의 통일신라에 비해 교육을 강조하여, 많은 학교(=향교)를 세웠습니다.

 

 - 이를 대표하는 것이 바로 고려 성종 대 중앙에 국립대학으로 국자감(국학)과 지방에 향교를 설치한 것으로 알 수 있습니다. 이와 별도로 경학과 의학교육 역시 강조하여 지방의 12목에는 "박사"를 파견합니다.

 

 - 국자감에 대해서 자세히 살펴보자면, 국자감은 신분별 입학기준이 있었습니다. 국자감은 유학부(=경학부) & 잡학부 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중요한 점은 평민 역시 입학도 가능했지만, 잡학부에만 입학이 가능했습니다.

 

  ** 또한 기술학부(율,산,서학) 외 기술교육은 담당 기관에서 교육을 실시했습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조선에서는 모든 교육기관을 해당 기관에서 담당했다는 데 차이가 있습니다.

 

   * 국자감의 교육기구 구분* 

 구분

 경사 6학

 입학 자격

 교육 내용

 유학부

 (경학부)

 국자학

 문·무관 3품 이상 관리 자손

 경전

 태학

 문·무관 5품 이상 관리 자손

 정치&역사

 사문학

 문·무관 7품 이상 관리 자손

 문학

 기술학부

 (잡학부)

 율학

 문·무관 8품 이상 관리 자손

 + 서민자제

 법률

 산학

 수학

 서학

 그림&서예

 

이러한 고려 초기의 교육제도는 중기에 이르자 사학이 융성하게 됩니다. 주로 이 때를 언제로 보는지에 대해서는 11세기 중엽 문종 대로 봅니다. 최충의 9재학당의 설립 이후로 보기 때문입니다. 요즘도 그런 점이 없지 않지만, 사학 교육을 받은 학생이 좋은 성적으로 과거에 합격하자 국자감(=국립교육)은 위축되어버립니다.

 

 

역사는 흐른다고 하죠? 이 때도 똑같습니다. 관학을 진흥시키기 위해서 다양하게 여러 제도들이 정비됩니다.

 

 첫번째 숙종은, 관학을 강화하기위해 서적포(=서적간행기구)를 설치합니다.

 

 두번째 예종은, 국자감을 국학으로 개칭하고, 국학 내부에 7재라는 전문강좌를 설치합니다. (7재 : 강예재(=무예) 포함) 그리고 다양한 도서기구를 설치하는데 청연,보문,천장,임천각을 설치합니다. 마지막으로 관학이 운영되기 위한 일종의 기금, 양현고를 설치합니다.

 

 세번째 인종은, 앞서 예종의 7재를 6개 강좌로, 즉 경사6학 체제로 정비합니다. 이때 중요한 서적이 간행되는데 바로 김부식의 "삼국사기"가 그것입니다. 삼국사기는 기전체로 작성됩니다.

 

 네번째 충렬왕은, 원간섭기에도 관학 진행에 힘씁니다. 양현고가 점차 부실해진 점을 보완하기 위해 섬학전을 설치하고, 성균관을 설치하며, 공자 사당인 문묘를 건립합니다. (참고로 최초로 문묘가 건립된 시기는 통일신라의 성덕왕 대 입니다.) 그리고 경사교수도감을 운영합니다.

 

 다섯번째 공민왕은, 성균관을 더 크게 부흥시켜 이제는 성균관에서 기술교육을 제외시키고 순수하게 유학 교육만을 전담시키도록 개편합니다.

 

 

 이렇게 많은 왕들이 관학을 진흥시키려 노력한 점을 알 수 있겠습니다. 이번 콘텐츠에서는 고려시대 문화에 대한 개략적인 설명과 교육제도에 초점을 맞추어 설명했습니다. 이후 콘텐츠에서도 고려시대의 문화에 대해 알아보려 합니다.

 

 

<참고 : 신영식 해동한국사, 네이버 백과사전, 두산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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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지난 고려시대의 토지제도의 맥락에 대해 살펴보았다면, 오늘은 고려시대의 토지의 종류에 대해 세밀하게 알아보려 합니다.

 

 

고려시대의 토지는

1) "소유권"이 누구에게 있는가를 기준으로 공전과 민전으로 구분되었습니다.

 

그리고

 

2) "수조권"이 누구에게 있느냐를 기준으로 공전과 사전으로 구분했습니다.

 

 

이를 아래의 표로 나타내면...

 

 기준

 구분

 내용

1) 소유권

 공전

 왕실, 관청이 소유한 공유지의 토지 (국가 소유)

 민전

 귀족이나 농민 등이 개인적으로 소유한 토지 (귀족, 농민 소유)

2) 수조권

 공전

 국가가 직접 수조권을 갖는 토지 (국가가 수취할 권리 있음)

 사전

 개인 등이 수조권을 갖는 토지 (귀족, 농민이 수취할 권리 있음)

 

위와 같습니다.

 

위의 사항 이외에도 다양한 토지들이 나오게 되는데요.

 

 

 

 

 과전

 문무 관리에게 차등있게 수조권을 지급했고, 원칙적으로 세습이 불가능.

 영업전

 : 세습 가능

 공음전

 - 과전은 일종의 관직을 수행함에 따라 받는 보수였다면, 이와는 다르게 문벌 귀족의 세습적인 경제적 기반이 되었으며, 5품 이상의 관리에게 지급함

 - 자손들에게 세습이 됐고, 음서제도와 함께 지위를 유지해 나갈 수 있는 기반이 됨

 외역전

 - 향리의 향역 대가로 지급한 것

 - 향직이 세습되었기 때문에 사실상 세습

 군인전

 - 중앙군에게 군역의 대가로 주는 토지로서

 - 군역이 세습됨에 따라 자손에게 세습 (조선시대에는 없음!!!)

 내장전

 - 왕실의 경비를 충당하기 위한 목적으로 지급

 공신전

 - 공신에게 지급한 토지로서 대대로 세습됨

 한인전

 - 6품 이하의 하급 관료의 자제로서 관직에 오르지 못한 사람에게 지급한 토지 (놀고 있는 사람을 ‘한인’이라고 생각해보면, 외우기 용이할 것입니다)

 구분전

 - 하급 관료와 군인의 유가족에게 지급

 공해전

 - 중앙과 지방의 각 관청에 지급하여 경비를 충당하게 함

 사원전

 - 절에 지급된 전지

 - 면세 면역의 특권이 부여됨

 별사전

 - 지관이나 승려에게 지급됨

 민전

 

 - 매매, 상송, 기증, 임대 등이 가능한 사유지

 - 소유권이 보장되어 함부로 빼앗을 수 없는 토지

 - 민전 소유자는 국가에 세금을 생산량의 1/10정도를 냄.

 

 

 

상당히 다양한 토지들이 많이 존재했는데, 이 중에서도 고려시대에는 존재했지만, 조선시대에는 없는 토지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향리들이 받았던 외역전이나 군인들이 받았던 군인전이 조선시대에는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이 그 예라 할 수 있겠습니다.

 

 

또 하나의 특징은, 고려시대의 귀족적 특징을 반영하는 음서제도와 공음전의 지급 기준이 5품이었다면, 조선시대에는 공음전이 없지만, 음서는 존재하는데, 주의할 점은 그 적용 대상이 2품으로써 그 적용 범위가 무척 제한이 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이상으로 고려시대의 전시과 제도와 그 전시과 제도 하에서의 토지의 종류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

 

 

 

 

<참고 : 신영식 해동한국사, 네이버 백과사전, 두산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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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고려시대 전시과 제도에 대해서 보다 세밀하게 알아보려고 합니다

 

 

고려시대의 토지제도는 전시과와 민전을 큰 축으로 운영됩니다.

또한 고려시대는 토지 자체는 나라가 소유하는 즉, 국유를 원칙으로 하나, 개인의 토지 소유권을 인정하였습니다.

 

 

이러한 내용을 바탕으로 그럼 전시과제도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요.

전시과제도는 국가에 봉사하는 대가로 관료에게 전지와 시지를 지급한 제도입니다. (전지와 시지에 대해서는 앞선 콘텐츠에서 설명한 바 있습니다.) 

 

 

전시과의 지급 대상

(누가받을까?) 

국가가 문무 관리 + 군인 + 한인에 이르기까지 18등급으로 나누어서, 전지(곡물 수취) & 시지(땔감 수취)를 지급 

 전시과의 특징

1) 수조권 지급

  - 소유권이 아니라 수조권을 지급받음

  - 수조권은 토지에서 조세를 가질 수 있는 권리를 말함

 2) 세습 불가

  - 관직에서 물러나면 수조권을 행사 할 수 있는 토지를 국가에 반납하는 개념이었음

 

 

 

이러한 내용은 이전에서 살펴본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고려시대 토지 제도의 정비가 이루어진 과정에서 등장했던 토지들에 대해 표로 제시하려 합니다.

 

 

1) 역분전 (태조)

 - 고려 개국공신에게 충성도와 인품을 고려해서 지급

 - 이는 논공행상(공을 헤어려 상을 지급)적인 성격을 지닙니다.

 - 통일신라 때 처럼 지역을 단위로 지급한 것이 아니라 전결 단위로 지급된 토지로 이후 등장하는 전시과 제도의 모체가 됩니다.

2) 시정전시과 (경종, 976)

1) 개괄

 - 광종 때의 4색 공복(자삼, 단삼, 비삼, 녹삼)을 기준

 

2) 주요특징

 - 최초의 전국적 토지 분급

  Cf) 조선의 전시과는 경기도를 대상으로 토지 분급됨

 

3) 문제점

- 관등의 고하와 함께 주관적 기준인 인품을 반영하여 역분전의 성격을 어느정도 지님

3) 개정전시과 (목종, 998)

1) 개괄

 - 인품이 배제되고 18품을 기준으로 관품만을 고려하여 수조지가 분급됨

 

2) 주요특징

 - 직관(현직관리)뿐 아니라 산관(전직관리)에게도 토지가 분급되었고, 군인전포함!!!

 - 그러나 산관보다는 직관을, 무반보다는 문반을 우대

 

3) 문제점

 - 토지 분급량이 이전보다 하향 조정

4) 경정전시과 (공음전시과, 문종, 1076)

1) 개괄

 - 관료들의 토지 독점과 세습이 심화되면서, 신규 관리에게 지급할 수조지가 부족해지게 되어 개정전시과를 다시 바꿀 필요가 대두됨.

 - 현직 관리에게만 수조권을 지급

  Cf) 조선시대 세조 대 현직관리에게 수조권 지급과 유사

 

2). 특징

 - 거란과의 항쟁 과정에서 무신에 대한 인식의 변화와, 무신의 직역이 힘든 일임을 감안한 결과로 무신에게 지급된 과등이 크게 향상됨.

 - 즉 무신에 대한 차별 대우가 완화됨.

 - 지방 향직, 이속(잡류)도 토지 지급 대상에 포함되었으며 (외역전),

   관아의 경비 충당을 위해 공해전의 규정이 마련

 - 경정전시과가 실시되면서 시정전시과 때부터 지급되던 한외과 소멸됨

 - 일반 전시과 외에 무산계전시와 별시과가 병설됨

 - 별사과는 지리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지사), 승려들을 상대로 분급한 토지 기준.

5) 녹봉제 (문종, 1076)

1) 개괄

 - 녹봉이란 내외 관리들에게 관등의 고하에 따라 현물로 지급하는 것을 말한다.

 - 녹봉 해당자와 별사를 받는 잡직종사자, 서리, 공장 등에게 지급

 

2) 주요특징

 - 실직주의 원칙으로써, 산직자에게 지급된 규정이 없는 것으로 보임

 - 녹봉의 지급방식은 국가각 관리들에게 1년에 2번 녹패를 주고, 관리는 녹패를 창고에 보여주면 해당 액수의 절반씩 지급 받는 방식이었음.

 

 

내용이 좀 복잡한 면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러한 고려시대의 주요 전시과 제도의 흐름을 핵심 키워드로만 언급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시 기

명칭

대상자

기준 

 특징 

 태 조

역분전 

개국 공신 

충성도, 성행 

논공행상 

 경 종

 시정 전시과

 전, 현직 문 무 관리

인품, 관등 

최초의 전국 규모 

 목 종

 개정 전시과

 전, 현직 문 무 관리

 관품의 높낮이

18품 전시과 

 문 종

 경정 전시과

 현직 문무 관리

 관품의 높낮이

 공음전 지급

(귀족 우대)

 

 

 

 

이상으로 고려시대의 전시과 제도에 대하 좀 더 세밀하게 알아보았습니다.

다음 콘텐츠에서는 고려 후기 시대의 토지제도에 대해 면밀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참고 : 신영식 해동한국사, 네이버 백과사전,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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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통일신라, 고려 그리고 조선시대를 걸쳐 일어났던 민란에 대해서 간단하게나마 알아보려 합니다.

 

 

어느 시대이든 왕권이 강화된 이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올바르지 못하게 변질되는 토지제도나 권력의 집중 등으로 각 국가의 마지막 단계, 또는 외적의 침입 등과 같은 변란으로 인한 제도의 변화로 말미암아 백성들의 고초가 심해지게 될 때 민란들이 발생했던 것 같습니다.

 

 

 

01. 통일신라

 
1. 신문왕 대 - 김흠돌의 난
2. 혜공왕 대 - 96각간의난(이벌찬)
3. 헌덕왕 대 - 김헌창 & 김범문의 난 (김주원vs김경신)
4. 진성여왕 대 - 원종과 애노의 난(최초의 농민반란)

02. 고려시대


1. 광종 대 - 준흥, 권신의 고변으로 왕동 모반
2. 무신정권 대  

  -  정중부 : 조위총의 난, 교종승려의 난, 공주 명학소의 난

  - 경대승 : 전주 관노의 난

  - 이의민 : 김사미&효심의 난

  - 최충헌 : 만적의 난, 동경의 난(신라부흥), 최광수의 난(고구려부흥)

  - 최우 : 이연년의 난(백제부흥)

 

 


03. 조선시대


1. 태조 대 1차 왕자의난(정도전vs이방원)
    정종 대 2차 왕자의난
2. 단종 대 계유정난 - 수양대군 왕위찬탈
3. 세조 대 이시애의 난 - 유향소폐지되었다가 성종 대 부활
4. 명종 대 임꺽정의 난
  * 3대의적 - 홍길동(연산군 대) /임꺽정(명종) / 장길산(숙종)

    이것은 이익의 성호사설중에서 나오는 내용..
5. 선조 대 정여립모반사건
6. 인조 대 이괄의난 (정묘호란 발발의 빌미가 됨)
7. 영조 대 이인좌의 난 (소론-노론의 도움으로 진압)
8. 순조 대 홍경래의 난
9. 철종 대 임술농민봉기

 

 

 

네, 이것으로 간략하게나마 통일신라시대에서부터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에 이르는 시기까지 발생했던 민란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각 개별 민란의 발생 원인과 배경 그리고 그 결과에 대해서 더 심도있게 알아본다면 더 기억이 용이해지리라 생각합니다.

 

 

(참고 : 신영식 해동한국사, 두산백과, 네이버 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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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조선시대의 서적에 대해서 알아보려 합니다.

알아보는 방법은 조선 왕조의 왕의 순서대로 당시 편찬되었던 서적들을 정리해보려 합니다.

 

 

태조

정도전

<조선경국전> : 최초의 사찬 법전

<경제문감> : 정치 조직의 초안

<고려국사> : 고려 멸망의 당위성을 제시하려는 목적에서 저술

<금남잡영,금남잡제> : 1375년 유배시 개인문집

<불씨잡변> : 유학의 입장에서 서술한 불교 비판서적

 (cf:불씨잡변은 정도전의 마지막 저서입니다.)

 

조준

<경제육전>

정종

 -

태종

[권근]

<동국사략>

"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

세종 

[정민지, 김종서]

<고려사> : 기전체로 저술

 cf) <고려사절요> : 편년체로 저술 (정민지, 김종서)

 

<농사직설>, <삼강행실도>, <팔도도>

 

의서 : <향약집성방>, <의방유취>

 

역법서 : <칠정산>

 

문학 : <용비어천가> <월인천강지곡>, <석보상절>, <정간보>, <총통등록>

문종 

<고려사절요> : 편년체로 저술

단종

 -

세조 

 

법전 : <경국대전> 집필시작하여 완찬은 "성종"

        but 형전과 호전은 세조 때 이미 나옴.

 

[양성지] : <동국지도> 

예종 

 -

성종 

 <경국대전>의 완성

 

[신숙주] : <국조오례의>

 

[서거정] : <동국통감>, <동문선>

 

[성현] : <악학궤범>

 cf) <정간보>는 세종 대 편찬됨. 헷갈리지 말아야 함.

 

[신숙주] : <해동제국기> 

연산군 

 -

중종 

 [박상] : <동국사략>

 

<신증동국여지승람>

 

<이륜행실도>

인종 

 

명종 

 [이황]

 

<성학십도> : 군주 스스로 꺠우침을 얻어야 한다는 저서

<주자서절요>

선조 

 [이이]

 

<성학집요> : 군주를 가르쳐야 한다는 저서, (집요하게 가르침)

<기자실기> 

<동호문답>

광해군 

[이수광] : <지봉유설> : 후에 남인과 불우 종친들이 연구함

 

[허준] : <동의보감>

인조 

한백겸 : <동국지리지> 

효종 

-

현종 

[유형원] : <반계수록> 

숙종 

-

경종 

-

영조 

[신경준] : <훈민정음운해>

 

[이익] : <성호사설>

 

[이중환] : <택리지>

 

[정상기] : <동국지도> : 100리척 사용

정조 

<대전통편> : 정조는 정통하다! 라고 생각하길..

 cf) 흥선대원군 <대전회통> : 흥선군의 "ㅎ"과 대전회통의 "ㅎ"

  

[안정복] : <동사강목>

 

[한치윤] : <해동역사> : 한진서와 함께 저술

 

[유득공] : <발해고>

 

​[홍대용] : <담헌서>, <임하경륜>, <의산문답>, <연기>, <주해수용>

 

 

 

[정약용] : <마과회통>

 

[정약전] : <자산어보>

[박지원] : <허생전>, <양반전>, <열하일기>

[박제가] : <북학의>

순조 

[정약용] : <목민심서>, <흠흠신서>

헌종 

[이규경] : <오주연문장전산고>

철종 

[김정희] : <금석과인록> 

 

[김정호] : <대동여지도>

고종 

[흥선대원군] : <육전조례>, <대전회통>

 

이제마 : <동의수세보원>

순조 

-

 

 

 

조선시대의 저서는 다른 시대에 비해 중요한 서적들도 많고, 눈여겨보아야할 서적들이 무척 많습니다.

 

이런 경우 한번에 다 외우려하기 보다도, 한국사를 공부할 때 정치사의 어느 왕을 학습할 때 등장하는 인물(신하, 장수)들의 행동에 대해서 하나씩 추가해나간다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암기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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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조선시대의 토지제도를 알아보려 합니다.

조선시대의 토지는 두음만 따면, "과-직-관-직"으로 외우면 좋은데요.

 

[과전법-직전법-관수관급제-직전법 폐지]가 그것입니다!

 

그리고 참고로 이전 콘텐츠에서 살펴본 고려시대 토지와 관련해서 추가할 부분은 다음과 같습니다.

 

고려시대의 공음전은 고려시대의 <전시과> 제도에서만 존재했다는 점입니다. 즉, <과전법>이라는 새로운 제도를 시행한 조선시대에는 공음전이라는 토지 종류가 없었음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공음전은 고려시대 전시과 제도에만 존재!, 조선시대엔 존재 X >

 

 

 

1) 과전법

 

 과전법은 위화도회군으로 권력을 장악한 이성계와 신진사대부들이 주도해 1391년(공양왕 3)에 실시한 토지제도입니다. 이 과전법은 조선 초기 양반관료사회의 경제 기반을 이루는 데 기여한 제도라 할 수 있습니다. 기존의 고려 말 사회의 권문세족이 소유한 농장으로는 새로운 나라의 통치 기반을 마련할 수 없었기 때문에 새로운 토지 개혁이 더욱 필요했습니다.

 

 이러한 과전법의 토지 제도의 특징은 아래와 같습니다.

 

  - 전지만 지급(노동징발 가능)

  - 수조권 지급

  - 18등급 기준

  - 경기8현 대상

  - 전현직 대상

  - 수신전 & 휼양전 존재했음

  - 1/10 수조

 

 

2) 직전법(세조)

 

 직전법은 조선 전기 현직 관리에게만 수조지()를 분급한 토지제도로써, 기존의 과전법으로 토지를 전현직 관리에게 분급하다보니 토지가 부족해진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세조가 시행한 제도입니다.

 

 고려의 전시과와는 다르게 조선의 과전법은 기존 전시과가 가지는 귀족들의 토지 소유로 인하여 국가 재정이 약화되는 현상을 막기 위해 경기도를 한정지은 점이 특징이라 하겠습니다.

 

 하지만 경기도를 한정으로 분급하다보니 그리 오래지 않아 분급할 토지가 부족해 지는 문제로 이렇게 세조 대 직전법이 등장하게 됩니다.

 

  - 수조권 지급

  - 현직만 지급 (→수신,휼양전 몰수)

  - 전주전객제

 

 

 

3) 관수관급제(성종)

 

 성종 때 실시한 토지 제도로 현재 공무원들에게 월급을 지급하는 것과 같은 제도입니다. 국가가 농빈 지배를 강화하기 위해서 국가가 직접 조세징수를 대행한 제도라 할 수 있습니다.

 

  - 국가가 직접 수조

  - 토지 지배권 강화

  - 수조권 지급

  - 대농장 가속화 (점차 지주전객제화되어감)

 

 

4) (직전법폐지) 녹봉제 (명종)

 

직전법의 폐지는 토지분급제의 사실상의 소멸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로써 수조권에 의한 토지지배와 그 아래에서 실제소유자가 전객()으로 파악되던 전주전객제()는 해체되고 현실의 소유자가 전주가 되게 됩니다. 즉, 토지지배관계에서는 소유권만 남았는데, 이는 사적 토지소유에 입각하여 성장해오던 지주전호제()의 확대현상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 소유권에 근거한 지주전호제 확대

  - 병작반수제 보편화 (지주전호제)

  - 대농장 보편화

 

 

이상으로 조선시대의 주요 제도들의 변천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참고 : 두산백과, 신영식 해동국사, 네이버 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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