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SMALL

안녕하세요, 오늘은 지난 조선시대의 과거제도 중에서도 문과와 무과에 이어 마지막으로 잡과의 선발단계에 대해 알아보려 합니다.

 

 

잡과는 일종의 기술직 선발 시험이라 보면 되겠습니다.

 

 

기술직을 뽑는 잡과는 총 46명을 선발하고, 초시해당관청에서, 그리고 복시예조에서 관장했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잡과는 무과와 다르게 전시는 없었습니다.**)

 

 

특별히 표로 나타낼 내용은 없고 위의 내용이 중요하다 하겠습니다.

 

 

 

이상으로 오늘의 내용을 마치기 보다도, 고려와 조선시대의 과거제도에 대해 추가적으로 알아보려 합니다.

 

 

조선시대의 문음은 범위가 고려보다 축소되어 2품이상 관원이나 3품이상의 청요직 등의 고위관리의 후손들을 대상으로 시행되었습니다.

 

 

이 경우에도, 취재의 절차를 거쳐야 했습니다. 무조건 '이 사람 괜찮다' 라는 말만으로 관직에 바로 임용되지는 않았다는 점에서 고려의 문음보다 까다로워졌다고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과거에 반드시 합격해야만 고위직으로 승진이 가능했습니다.

 

 

또 고려와 조선 모두 현직관리가 다시 과거에 응시하여 고위직으로 승진하는 것을 생각해보는 것이 가능했습니다. 참고로 조선의 경우는 정3품 하직 당하관 이하로 자격이 더 넓어졌습니다.

 

 

추가적으로 조선의 왕세자는 성균관에서 입학식을 치르고 궁궐 내부의 세자시강원에서 교육을 받았습니다. 존경각이라고 하는 곳은 유생들이 사용하던 도서관으로 세자 교육기구가 아님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네, 지금까지 조선의 과거 제도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고려보다 한층 더 합리적이고 실력 중심의 채용제도를 마련했다고 하겠습니다. 기억해야할 점이 많다고 생각되겠지만, 정확한 채용인원의 숫자와 조선과 고려의 차이점이 있는 부분을 기억하신다면 충실한 학습이 이뤄지겠습니다.

 

 

<참고 : 네이버 백과사전, 두산백과사전>

728x90
반응형
LIST
728x90
반응형
SMALL

지난 콘텐츠에서는 문과에서의 관리 선발 제도를 알아보았고, 이번에는 무과와 잡과에 대해 알아보려 합니다.

 

 

무과는 문과와 달리 2단계 전형이 아니라, 1단계 전형으로만 이뤄졌습니다. 즉 진사와 생원이라는 표현은 무과 응시생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1단계 전형으로 이루어진다고 생원과 진사처럼 백패를 지급했을까요? 아닙니다, 무과에 최종합격한 사람에게도 문과 최종합격자에게 홍패를 지급했던것처럼 "홍패"가 지급되었습니다.

 

 

 

무과에서의 1차 전형인 초시에서는 원시 70명, 향시 120명으로 나누어 선발합니다. 그 후 2차 전형인 복시에서는 총 28명을 선발합니다.

(**문과에서 복시 합격자 33명과는 대조를 이룹니다.**)

 

그 후 마지막 3차 전형인 전시에서 순위를 가르게 되는데, 갑과 3명, 을과 5명, 병과 20명을 선발하게 됩니다.

 

 

역시 이를 표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무과>

                "초시"            "복시"            "전시"

1단계 :  원시 70명            28명            갑과 3명

 향시 120명                             을과 5명

    병과 20명

 

 

 

이와 같습니다. 참고로 조선시대의 무과는 "복시"에서 <경국대전>과 <무경(병서&경서) 시험을 보게 했습니다.

 

 

참고로 고려시대에도 무과는 존재하긴 했습니다만, 거의 실시되지 않았기 때문에 없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고 하겠습니다.

(예종 대, 강예재가 있었지만 바로 뒤 인종 때에는 경사6학 체제로 정비가 되면서 금방 사라집니다)

 

이상으로 무과의 과거 제도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

 

 

 

<참고 : 네이버 백과사전, 두산백과사전>

728x90
반응형
LIST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