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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지난 시간에 이어 이번에는 조선시대의 왕들의 업적 내지는 그 시대에 중요했던 사건들을 중심으로 서술하려 합니다!

 

 

이전에 조선시대는 태정태세문단세로 시작한다고 말씀드렸을텐데요.

그래서 이번에는 태정태에 대해서 알아보려 합니다. 

 

 

01. 태조 (1392-1398)

 


1. 정도전을 통한 조선의 제도 정립
 

 - 태조는 그야말로 정도전의 활약이 주목할 부분이라 하겠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바로 조선의 기틀을 마련하는 데 크나큰 역할을 맡기 때문이죠. 그래서 그가 마련했던 저서가 특히 수험에서 중요하기 때문에 설명하려합니다.


  ## 저술## 
 1) 조선 경국전
 - 조선 개국의 기본 정책을 규정한 최초의 법전입니다. 하지만 주의할 점은 이것은 사찬법전이지, 조선이라는 나라의 법전은 아닙니다. 후에 나오겠지만 조선의 국법으로서의 법전은 "경국대전"입니다.
 
 2) 경제문감 
 - 조선시대의 정치 조직에 대한 초안에 대해서 서술한 책입니다.

 
 3) 경제육전

 - 위화도 회군(1988) 이래 10년간 행해져왔던 조례를 정리한 것으로써 이것은 관찬 법전입니다. (조준과 함께 작성했습니다)

 - 경제육전의 또다른 특징은 바로 '조종성헌'이라고 하는 최초의 성문 법전이라 하겠습니다.

 - 조선 초기에는 이두로 작성되어 방언육전 또는 이두원육전이라 불리기도 했고, 태종과 세종 대에 각각 속육전이 간행됩니다.
 
 4) 진법서

 - 명나라는 조선 태조의 父를 태조의 정적 이인임이라고 기록을 하는데요. 이를 표전문제라 합니다. 이것을 원인으로 외교적 마찰이 벌어지고 요동정벌을 추진하는 과정에 이르는데 정도전은 독자적으로 전술을 정리합니다. (참고: 이방원-후의 태종은 명과의 싸움을 반대했습니다.)


 5) 불씨잡변

 - 불씨잡변이란, 말그대로 불씨(=부처님)의 말이라는 뜻으로써, 유학의 입장에서 불교를 비판한 책입니다. 이 책에서는 배불의 정당성과 숭유억불에 대해 주장합니다.

 - 중요한 또다른 특징은 바로 불씨잡변은 정도전의 마지막 저술입니다.


 
 6) 고려국사

  - 고려국사는 조선왕조 개창의 정당성과 고려 왕조 멸망이 당연했음을 서술한 책입니다. 하지만 이 책은 조선의 입장에서 쓰여진 상당히 주관적인 저서였기에 후에 세종 대에 고려사가 쓰여지게 됩니다.

 


 

 2. 성리학적 통치 이념 확립
 
  - 앞서 설명했던 것처럼 정도전을 포함한 여러 신진사대부들은 대거 중앙 정계에 참여하여 성리학적 통치 이념을 확립시키게 됩니다.


 

 3. 정치 체제 정비
 
 - 또한 정도전, 조준을 중심으로 재상 중심의 체제가 확립되면서 국가의 정책을 도평의사사에서 결정하게 됩니다. 중요한 사실은 도평의사사(=도당)는 태종 이후에 기구가 사라지게 됩니다.

 - 정도전은 재상중심의 정치를 강조했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는 국정에서의 왕권이 약화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02. 정종 (1398-1400)


 

 고려왕조도 그랬듯이 새로운 왕조가 들어서면 태조가 있은 후의 왕권은 다소 불안정한 편입니다. 정종 역시 제1차 왕자의 난 이후에 이방원(=태종)의 영향력 아래에서 즉위한 정종은 한양에서 개경으로 천도합니다. 
 

사실 정종은 재위기간이 긴편은 아니기 때문에 큼직한 사건은 없었지만 그래도 중요한 사실이 바로 관제의 개혁이라 할 수 있는데요. 주요 관제 개혁은 아래와 같습니다. 

 

  1) 도평의사사를 축소와 의정부의 설치

    - 고려시대 기구였던 중추원을 삼군부로 개편합니다.

 

  2) 집현전 설치

   - 고려를 본따 유학과 정책 연구 기구로서 집현전을 설치합니다.
 

 

 

03. 태종 (이방원) (1400-1418)


 

 태종 이방원은 두 차례의 왕자의 난을 진압하고 형제들과 개국공신을 숙청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방원은 강력한 왕권 중심으로 국가를 경영하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태종은 아래와 같은 일을 진행합니다.

 - 도평의사사 폐지, 6조 직계제 실시

 - 정종 대 설치되었던 의정부 정비, But 실권없음 (후에 세종 대 역할강화)

 - 왕권강화를 위한 목적으로 대신들을 견제하기 위해 사간원 독립

 - 왕실 외척 및 종친의 정치적 영향력을 약화시키고 왕권을 강화

   (후에 종친과 외척은 세조 대 영향력이 강화됩니다)

 
 

 이러한 태종은 대체로 왕권 강화를 위해 의금부와 승정원을 설치합니다.

 
 

 ##국가 기반 확립##을 위한 태종의 여러 정책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1) 억불 정책

   - 사원 경제를 정비하여 전국 242개의 사원을 제외한 나머지 사원의 토지와 노비 몰수

  2) 국가 재정분야

   *양전 사업 : (매 20년마다) 전국 토지 측량,

   *호구 파악 : 가호의 수와 장정이 수를 책정하여 호적 작성

  3) 호패법  : 16세 이상의 남자에게 지급

  4) 기타 정책

   - 공도 정책

   - 두만강 국경 지역(경성, 경원)에 무역소 설치

   - 노비변정도감 설치

   - 사원, 관청 및 개인의 노비를 조사하여 억울하게 노비된 자 수십만 명 해방 
   - 신문고 설치
   초기에는 국왕의 직속 기관인 의금부에서 신문고를 주관함

 - 연산군 때 폐지되었다가 영조 대에 다시 부활 (영조 대는 병조에서 관할)


  - 한품서용제와 서얼금고법

  - 재가금지법

 
 

 ##태종의 문화##

  1) 활자의 주조 : 주자소를 설치, 구리로 만든 동활자로 '계미자' 주조

  2) 저화의 발행 : 사섬서(공양왕 대  지폐 '저화'를 재발행)

  3) 법전의 편찬 : 원육전, 속육전(하륜) 법전을 간행하여 전국 반포

  4) 이회와 이무에게 혼일강리역대국지도를 제작시킴(현존하는 동양 최고(最古)의 세계 지도)
 

 

 

네, 이상으로 오늘은 태정태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다음에는 세문단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참고 : 신영식 해동한국사, 네이버 백과사전,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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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고려시대에 이어 조선시대에 대해 살펴보려하는데요. 조선시대가 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단지 이성계라는 위인이 있어서 였을수도 있지만, 고려말의 부패한 현실에 대해 개혁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없었다면, 그 일들은 불가능한 일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조선이 등장할 수 있도록 한 신진사대부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려 합니다.

 

 

 

<신진사대부의 성장>

 

 

(1) 성격

- 신진사대부의 성격은 주로 다음과 같겠습니다. 고려 말 과거를 통해 새롭게 중앙 정계에 등장한 신진사대부들은 권문세족의 횡포를 비판하고 고려 사회의 폐단을 개혁하려 했습니다.

 

- 신진사대부들은 성리학적 소양을 갖춘 학자적 관리로서, 진취적 성향을 가지고 있었고, 중소 지주층으로 지방에서 어느 정도의 경제적 기반을 바탕으로 성장하였으며, 향리의 자제들이었으므로 행정 실무에 능한 성격을 갖고 있었습니다.

 

 

- 신진사대부들의 성장은 그냥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들은 권문세족을 비판하며 개혁을 추진하던 신진사대부들은 농민의 지지를 바탕으로 성장하였고, 홍건적과 왜구를 격퇴하는 과정에서 성장한 신흥 무인 세력과 정치적 협력 관계를 맺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신진사대부들은 그 내부에서도 고려의 개혁방향을 놓고 나뉘게 되는데요. 고려 말 공민왕의 개혁이 원의 압력과 권문세족의 반발로 인해 실패한 후, 개혁 방향을 둘러싸고 신진사대부는 혁명파와 온건파로 분화되게 됩니다. 이들의 갈등은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 이후 이성계의 역성혁명을 놓고 대단히 갈등이 첨예해지게 됩니다. 그래서 신진사대부를 둘로 나눈 그 성격을 하나씩 살펴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온건파 신진사대부입니다. 이들은 비리의 핵심 세력을 제거하고 권문세족의 대토지 사유는 정리는 하는 데 동의하지만, 고려왕조 자체를 파과하거나 전면적인 토지 개혁에는 반대했다는 데 큰 주장을 갖고 있었습니다.

 

 반면에 둘째, 급진파 신진사대부는 이성계의 역성혁명에 대해서 즉각 찬성하고 권세가들에 의한토지 사유를 축소시키려했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이들의 주장은 새로운 나라를 만드려면, 새로운 경제제도에서 기존 기득권 세력들의 힘을 무력화시킬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이들이 그렇게 갈등이 첨예하게 만들도록 했던 그 사건, '위화도 회군'은 어떤 사건이었을까요.

  

 

위화도 회군은 배경부터 설명하면 깁니다. 명나라는 공민왕 때 수복한 철령 이북의 땅이 자신의 영토라고 주장을 해오게 되지요. 이것은 고려에 적잖은 충격을 주게 되고, 이에 대해 명나라의 철령위 설치에 대해 최영 장군 즉각적인 출병을 통해 요동을 칠 것을 주장하지만, 반면에 이성계는 4불가론을 제시하며 출병에 반대합니다.

 

 

이러한 양립되는 견해 속에서 고려 조정은 최영 장군의 주장대로 요동 정벌을 단행합니다. 하지만, 이성계는 위화도에서 군대를 개경으로 돌리게 되고, 결국 최영 장군과 권문세족들을 없애고 군사적 실권을 장악하게 됩니다. 이를 위화도 회군 사건이라 합니다.

 

 

이 위화도 회군을 결과로 이성계와 결탁한 급진파 신진사대부의 정치기반으로 자리잡게 되어 새로운 나라 조선에 대한 개혁을 가능하게 합니다. 

 

 

이렇게 급진 신진사대부들은 새롭게 정권을 잡고, 새로운 나라를 건국하기 전에 먼저 경제제도를 만들게 되는데요. 그것이 바로 과전법입니다. 

 

 

과전법 공포(1391)

 

 #배경

 - 권문세족의 불법적 토지 겸병으로 인해 면세전(대농장)이 확대되면서 국가 재정이 파탄이 나게 되어 관료의 녹봉마저 제대로 지급되지 못한 상황에 대해 개혁을 하게 됩니다.

 

 #과전법 시행 과정

 -  정도전 등의 신진사대부는 공사 토지 문서를 모두 불사르고, 새로운 양안을 작성한 후, 토지에 대한 수조권을 다시 조정하게 됩니다.

 

  #결과

 - 새로운 조세제도를 통해 기존의 권문세족들이 소유한 막대한 토지로 인해 농민들에 대한 피해를 복구하고, 새로운 관료들을 위한 봉급 체계를 만들게 됩니다.

 

 - 이러한 경제 제도 개혁의 성공과 더불어 1392년 7월 16일에는 결국 고려의 마지막 왕, 공양왕이 이성계에게 왕위를 양위하게 되어 결국 조선이 건국되게 됩니다.

 

 

 

네, 이것으로 오늘은 조선시대를 이끌었던 주역이라 할 수 있는 신진사대부들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이후 조선의 내용에 대해서 앞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참고 : 신영식 해동한국사, 네이버 백과사전, 두산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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